Page 24 - 정형외과 소식지 392호-10월호

동양고전산책(東洋古典散策)

김인권 (한국 한센복지협회 회장)
(서울 예스병원 병원장)

24 淸風明月(청풍명월: 맑은 바람, 밝은 달)

정
형
외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맞이하는 가을은 그래도 살기 좀 나은 계절이다. 곡식이 익어 추수를 하여 예부터 이 시기에는
과 일이 많아 몸은 고단해도 잠깐은 배고픈 시름을 내려 노을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10월을 일 년 농사가
학
회 마무리되고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으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소 상달이라고 불렀다. 또 기온이 시원하고 날씨가 맑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고 더욱이 계수나무와 토끼가 보일
식 것 만 같은 밝은 달을 볼 수 있어 그나마 생활에 찌든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계절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우리나라의 자랑을 하늘이 맑고 물이 깨끗하다고 하였던 생각이 나고 한편 오죽 자랑 할 것이 없으면 그런 것을 자랑이라고
하였나 하는 생각이 난다. 그러나 요즘 잠깐 그런 자랑을 할 만한 계절이 온 것 같다.
가을은 이런 청명한 날씨와 어울리는 현란한 색조의 단풍의 계절이다. 금수강산 즉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화려함의
계절이다. 먹거리가 풍성하고 살만한 날씨에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서도 한편 쓸쓸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이런 좋은 시절이
순간이고 이 시절이 지나면 또 견디기 어려운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편안함을
편안함으로 즐길 줄 모르고 닥쳐올 어려움을 걱정하는 소시민적인 나 자신을 자책한다.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진 나뭇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나운영 작곡 윤복진 작사의 이 가곡은 가을을 잘 나타내는 서정적인 노래다. 작사자인 윤복진이 월북하자 나운영은 자신이 14세 때
작곡한 이 가곡이 금지될 것을 우려하여 작사자를 김수경이란 가명으로 표기했고 또 문제가 되자 아예 나운영 작사로 고쳤다.
1960년대는 6.25전쟁의 상처가 미처 아물지 않은 데다 남북의 이념 대립이 강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방송윤리위원회에서
는 1965년 월북 작가들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월북 작가에 대한 금지곡 지정 이후 노래의 개명과 개사가 만연하였
고 이는 원작자가 누군지 알기 힘들어지는 혼란을 초래하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공산권 국가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참여를
권유하였고 그에 따른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유화정책과 대외홍보를 위해 노태우정부에서는 8·15해방 이전에 발표된 월북작
가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전면적인 해금이 이루어졌다. 이에 박태원·이태준·현덕·임화·김남천 등 월북작가 1백20여 명의 8·15
전 문학작품의 공식 출판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 후 월북작가를 금기하지 않게 됨으로 해서 다시 이 가곡이 아무 거리낌없이
작사자 윤복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秋風淸 맑은 가을바람
秋月明 밝은 가을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