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정형외과 소식지 392호-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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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 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26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정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하시오
    형          총기는 늘 지니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외
    과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학          이것을 잠가둘 상아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회
    소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식          차 시간을 놓친 손님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노천명의 ‘추풍에 붙이는 노래’다. 독신으로 살다가 46세로 쓸쓸하게 홀로 죽어간 시인의 외로운 감정과 자신의 삶에 대한
               悔恨(회한)이 이 시 추풍에 붙이는 노래에 그대로 녹아있다. 지금 우리 현실은 한동안 금기되었던 월북작가의 작품을 그
               사람의 월북 후의 행적을 따지지 않고 작품으로만 판단하는 성숙함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 일제강점기 때의 친일성향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였던 노천명, 서정주 등의 작품이 이제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만행의 결과지만 한편은 조선의 국왕을 위시한 지도층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다. 그로 인해 조선은 없어지고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통치하에 살 수밖에 없었다. 더러는 저항하였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순응하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일본의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한 남북 분열은 우리의 슬프고 아픈
               현실이다.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국민들은 그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용공으로 또
               친일로 배제한다면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어려움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여러 약한
               모습으로 판단하는 것 보다는  그들의 불가피한 처지를 이해하고 예술을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판단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의 冬天(동천)이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고 그 후 권력자에 아부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폄훼되었고 그의
               시비는 철거되고 작품들은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대의 누구도 이런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주지 못하였다.
               이렇게 밝은 달 아래 맑은 바람을 맞으며 이념과 전력을 떠나 뛰어난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가을을
               맞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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