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정형외과 소식지 384호-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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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산책(東洋古典散策)
김인권 (한국 한센복지협회 회장)
(서울 예스병원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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蕭規曹隨(소규조수: 소하가 정한 법을 조참이 계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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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조 유방은 회남왕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다 화살에 맞은 부상이 심해져 재위 12년에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병이 회
심해지자 ‘인명은 재천이라 편작이 온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고 치료를 거부했다. 이에 呂后(여후)가 물었다. ‘폐하 100년 소
식
뒤 相國(상국) 蕭何(소하)가 죽으면 누구에게 뒤를 잇게 합니까?’ ‘曹參(조참)이면 될 것이오.’ 그 다음을 물으니 ‘王陵(왕릉)이면
되겠지만 왕릉은 다소 고지식하니 陳平(진평)이 그를 도우면 될 것이오. 진평은 지혜가 넘치지만 혼자 맡기는 어려울 것이오.
周勃(주발)은 중후하고 꾸밈이 없소. 유씨 집안을 안정시킬 사람은 틀림없이 주발일 테니 태위를 삼으면 되오.’ 여후가 다시 그
다음을 묻자 ‘그다음은 당신이 알 바가 아니오.’하였다. 이에 고조 유방과 여후 사이의 적장자 劉盈(유영)이 이어 惠帝(혜제)가
되었으나 呂后(여후)가 실권을 잡고 정사를 주관하였다.
소하는 고조 유방과 고향이 같은 沛縣(패현) 豐邑(풍읍)사람이다. 법률에 통달하여 일 처리하는 것이 공평하였고 패현의
인사나 총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를 지냈다. 유방이 아직 벼슬하지 않고 있을 때 소하는 여러 차례 관리 신분으로 유방을
보호해 주었다. 유방이 亭長(정장)이 되었을 때도 소하는 늘 그의 곁에 있어 도움을 주었다. 유방이 군대를 일으켜 패공이 되자
소하는 현승이 되어 각종 일을 감독했다. 패공이 된 유방이 秦(진) 3세 자영의 항복을 받고 함양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이 앞
다투어 금과 비단이 있는 창고로 달려가 그것들을 나누어 가졌으나 소하는 먼저 궁으로 들어가서 진나라 승상부와 어사부의
법령과 도서들을 거두어서 감추었다. 패공이 漢王(한왕)이 되자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그 후에 들어온 초패왕 항우는
제후들과 함께 함양을 약탈하고 불사르고 떠났다. 한왕 유방은 천하의 험준한 요새와 호적과 인구수의 많고 적음, 물자가
많거나 적은 곳, 백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등을 모두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소하가 진나라의 지도와 도서 및 문서들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유방이 항우에 의해 한왕으로 봉해져 蜀(촉)으로 들어갔다가 그 후 다시 나와 함양을 정벌할 때도 승상으로
蜀(촉)에 남아 촉을 지키며 지역을 안정시키고 명령을 깨우쳐 알려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군대에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다.
한나라 2년 한왕은 제후들과 초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소하는 태자를 모시고 關中(관중)을 지켰다. 소하는 관중에서 호적과
인구를 관리하고 식량을 징수하여 수로를 통해 군대에 공급했다. 한왕이 패해 여러 차례 군대를 버리고 달아났으나 소하는
항상 관중의 병졸을 징발하여 군대의 빠진 인원수를 메웠다. 한왕은 이런 이유 때문에 소하에게 관중의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고조 유방이 전장에서 후방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하가 후방을 안정시키고 병참과 군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