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정형외과 소식지 384호-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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蕭何爲法(소하위법) 소하가 제정한 법
顜若畵一(강약획일) 하나같이 밝고 곧았네
曹參代之(조참대지) 조참이 그 뒤를 이어
守而勿失(수이물실) 지켜 잃지 않았네
載其淸淨(재기청정) 맑고 공정하게 정사를 돌보니
民以寧一(민이영일) 온 백성들 한결같이 편안하네.
상국 조참이 野戰(야전)의 공로가 많음은 韓信(한신)과 같다. 그런데 한신이 멸망한 후에 열후에 봉해진 공신 중에서 유독
조참만이 그 이름을 빛냈다. 조참이 한나라의 상국이 되자 시행했던 그의 정치 사상 淸淨無爲(청정무위)는 도가의 원칙과 가장
부합된다고 하겠다. 더욱이 백성들이 진나라의 잔혹한 통치를 받은 후, 조참이 그들에게 無爲而治(무위이치)로 휴식하게 하자, 33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조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정
유방의 부인 呂雉(여치)는 산동성 單縣(단현)사람 呂公(여공)의 딸이다. 여공은 패현 현령과 잘 지냈는데 원수진 사람을 피하여 형
현령의 빈객이 되어 패현으로 이사하였다. 여공은 관상보기를 좋아했는데 유방의 생김새를 보고 매우 귀하게 여겨 자리로 외
과
이끌었다. 그리고 여공이 유방에게 ‘나는 관상보기를 좋아하여 많은 사람의 관상을 보았는데 이제껏 그대만한 관상은 없었오.
학
그러니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시오. 내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대에게 시집보낼까 하오.’라고 하여 딸 여치를 유방에게 회
시집보냈다. 소
식
유방은 패현의 건달이었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내다 정장이 되었다. 집안도 여씨집안이 유방의 집안보다
지체가 높았다. 여후는 강단이 센 사람이라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에 힘을 보탰고 한신 등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황제가
되는데 역할을 했던 공신들을 제거하는데도 여후의 힘이 컸다.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낳은 아들 유영을 혜제로
세웠으나 실권을 행사하였고 점차로 유씨들을 배제하고 여씨들을 중용하였다.
고조 유방은 여러 부인과 희첩들 사이에 8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 戚(척)부인과 그의 아들 如意(여의)를 사랑해 여후와의
사이의 태자 유영을 폐하고 유여의를 세우려고도 했다.
고조가 죽자 여후는 趙王(조왕)으로 가 있는 여의를 불러 독살하고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멀게 하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고는 人彘(인체:사람돼지)라고 불렀다. 며칠 뒤 여후는 사람돼지를 보여주겠다고
하며 혜제를 불렀다. 혜제는 그가 척부인 임을 알고 큰소리로 울고 이로 인해 병이 나서 1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였다.
사람을 시켜 태후를 청해서는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제가 태후의 아들로서 아무래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고 그 후 날마다 술과 환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병까지 생기고 말았다.
혜제는 재위 7년 24세로 죽었으며 사후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나 여후는 자신의 손자를 곧 폐위시키고 살해하였으며
유방의 아들 조왕 유우가 여씨 집안의 여자를 왕후로 맞이하였으나 사랑하지 않고 다른 희첩을 사랑하는 문제로 그를 가두어
굶어 죽게 만들었다. 또 새로 조왕이 된 유회를 자신의 조카인 여산의 딸을 왕비로 맞게 하여 그 왕비의 일족이 조왕을
감시하게 하였다. 조왕이 사랑하는 희첩이 있었으나 왕후인 여씨가 독살하자 왕은 슬퍼하다가 자살하고 말았다. 점차로
유씨들을 축출하고 여씨들을 등용하여 여씨의 세력을 공고히 하였다. 여후가 祓祭(불제;재앙이나 화를 면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지내고 오다가 蒼犬(창견:푸른개)같이 생긴 괴물이 겨드랑이를 들이 받고 사라졌는데 점을 치니 조왕 여의의
귀신이라고 했다. 이후에 병세가 심해져 고제 유방의 사후 15년 62세로 죽게 되었다.

